홍도연



본인과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횡단보도나 철골 구조물 위에 발을 딛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연작을 통해 드로잉의 속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연필을 사용해서 저를 둘러싼 풍경을 드로잉과 드로잉을 이용한 무빙이미지로 제작합니다. 종이에 연필로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해서 남은 자국과 흔적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지금을 통과하며 겪고 있는 문제를 종이 위에 남겨서 생각의 궤적을 기록하려는 동기에서 비롯합니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작업 노트 겸 일기에서 드로잉의 소재를 얻습니다. 매일 기록하지는 못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노트 한 쪽 분량의 글을 씁니다. 내용은 대개 드로잉 재료에 관한 정보, 드로잉이란 매체에 대한 단상, 당시 마음에 남는 장면이나 읽은 책에 관한 감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종이 위에 작업 노트 속 글씨와 그림을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카메라로 촬영한 후, 사진 파일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편집합니다.
       영상에 작업 노트 속 글이 나타나다 보니 스스로가 노출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허점과 한계가 드러나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발표를 염두에 둔 것이고, 실수와 착오를 숨기지 않는 점이 드로잉의 성격이지 않냐고 되뇝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작업에 비교적 투명하게 나타난다면, 그런 방식을 선택했다면 버티면서 그리고 또 지우는 수밖에 없다고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미래를 상상할 때 가장 두렵습니다.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미술관들은 동향을 살피며 임시 폐관과 개관을 반복하고 입장 시간과 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갤러리들은 전시는 열되 개장 시간을 줄이고 조심스럽게 홍보하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어렵게 전시를 열고도 마음껏 알리거나 동료들과 모여서 축하하는 일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내년, 아니면 내후년에 전시를 열게 된다면 저는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 시국에 조심스럽지만...’으로 시작하는 문구로 전시를 홍보하고 전시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면 체념할 것 같습니다. 몇 년 후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답답합니다.
      사실 전시보다도 일자리를 얻기가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상상하면 암담합니다. 먹고사는 일을 생각하면 지금 작업을 하고 있어도 되나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돈벌이에 대한 염려는 팬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저를 따라다닐 문제이지만, 대면으로 할 수 있을 일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절망적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일을 구하는 중인데 과연 직접 마주하며 이뤄지는 미술 수업 일자리를 꾸준히 얻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작업을 구상하면 일자리가 걱정되고, 일자리를 걱정하면 작업을 향한 의욕이 조금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부분을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계시나요?
앞으로 예술가들이 온라인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저는 종이 드로잉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과정과 결과물을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어떻게 온라인 환경을 이용해야 할지 아직 대안은 없습니다. 문화재단에서 공모를 통해 온라인을 활용한 예술 활동 발표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기존 작업을 온라인으로 발표하는 것보다는 온라인 환경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류에 맞게 작업 방향을 고쳐야 하나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 방법이 맞는 것인지 확신은 없습니다. 만약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경향을 수소문하고 새로운 매체를 탐색한다 한들 그 분야의 작가들을 언제 따라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근심스럽습니다.
      지금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혼자 보내고 있어서 매 순간 코로나19 상황을 의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버스터미널이나 가게에 갈 때에는 마스크를 쓰고, 가능한 한 외출을 자제합니다. 가끔 들어오는 단발성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고 소비를 줄입니다. 다행히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면 돈이 들어오는 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에서 기획한 신진작가 작품 구입 공모와 공공미술 아이디어 공모 상금, 예술가의 생존을 주제로 한 전시 지원금으로 코로나19가 아니면 못 받았을 돈을 받았습니다. 당분간은 궁지에 몰리지 않고 생활하며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떠올리면 두렵지만 현재를 버티는 수 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합니다. 재난을 겪는 사회 분위기가 제 자신과 작업에 영향을 끼치고 있겠지만 그 결과는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 드러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여러 행사나 디지털 플랫폼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요즘 드로잉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종종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큐레이터와 작가의 대화를 중계하거나 줌으로 드로잉 교육을 합니다. 작가가 미술관 안을 걸으며 자신의 전시를 설명하는 짧은 영상도 공개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아니었다면 온라인 프로그램이나 전시장 촬영 영상을 잇따라 기획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뉴욕이라는 물리적인 장소에 제가 방문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온라인 이벤트를 주시하게 됩니다. 온라인 행사가 현장을 따라가진 못하겠지만, 그 현장마저 갈 수 없을 때에는 관람객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관객 입장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는 행사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듯 합니다. 지난달, 제가 구독하는 잡지의 기획단이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는데 60분 중에서 15분도 채 듣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어느새 컴퓨터로 다른 창을 띄우고 딴짓을 하게 됩니다. 만약에 제가 시간을 들여서 행사장에 갔다면 그 수고가 아까워서라도 분명히 집중했을 것 같습니다.


평소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계시나요?

드로잉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경우,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7분 15초짜리를 제작하는데 총 2,500여장의 이미지 파일이 필요했습니다. 플립북처럼 낱장마다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총 두 세 장의 종이에 2,500번 획을 긋고 지우며 매 장면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책상 양쪽에 삼각대를 놓고 그 사이를 스탠드로 연결한 뒤 중앙에 카메라를 고정시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고 리모컨으로 사진을 촬영합니다. 실수로 찍지 않고 넘기면 영상의 동작이 어색해지고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라 애니메이션 소스를 마련하기 위해 드로잉 할 때는 강박적으로 사진을 남깁니다. 이렇게 마련한 소스를 외장하드와 컴퓨터 두 군데에 보관하고, 편집한 파일과 최종 영상도 두 개의 저장장치를 이용해서 보관합니다. 그 후에 개인 홈페이지에 유튜브를 이용한 영상 링크와 캡처 사진이자 중간 과정이기도 한 이미지를 게시합니다. 평면 드로잉을 촬영할 때에는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고안한 카메라 설치 환경을 그대로 이용합니다.
      전시 전경 사진의 경우 전시를 주최하는 곳마다 사정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전문 사진작가가 전경 모습을 촬영해서 공유해줄 때도 있고, 아닐 경우 제가 전시 모습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 전시가 끝나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 몇 번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전시 모습을 꼼꼼하게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최근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올해 봄부터 작업실 앞마당에 찾아오는 커다란 고양이와 자주 시간을 보냅니다. 창작센터 인근 마을을 걷다가 만난 치즈냥 입니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작업실 건물까지 따라오더니 마당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당을 함께 산책하고 쓰다듬고 말을 걸고 날씨가 좋을 땐 밖에서 고양이를 바라보며 사생을 합니다. 가을이 시작되고부터 고양이라는 텍스트를 필사하는 마음으로 고양이만 그립니다. 이곳은 산과 밭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같은 공간에서 함께 날씨를 감각한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같은 동물이구나 하는 마음이 됩니다. 바람이 많이 불면 함께 바람을 맞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각자 비를 피하고 비가 그친 뒤 마른 자리에서 다시 만납니다.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이 장소와 구체적으로 만나는 느낌입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올해 처음으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몇 년간 계속 창작센터에 입주하고 싶습니다. 독립적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동시에 옆 방에 동료작가가 있다는 사실이 작업을 해나가는 데 용기를 줍니다. 혼자만 어둠 속에 있는 게 아니고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 동료들과 함께 있으면 작가라는 직업이 어딘가에 있는 멀고 낯선 일이 아니라 하루하루 작업을 하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홍도연, 2020, 종이에 연필, 40 x 58 cm. ‘고양이와 나, 단채널 영상, 사운드, 5분(예정)’을 위한 드로잉

홍도연, 2020, 종이에 연필, 40 x 58 cm. ‘고양이와 나, 단채널 영상, 사운드, 5분(예정)’을 위한 드로잉

홍도연, 2020, 종이에 연필, 40 x 58 cm. ‘고양이와 나, 단채널 영상, 사운드, 5분(예정)’을 위한 드로잉

1–3    홍도연, 2020, 종이에 연필, 40 x 58 cm. ‘고양이와 나, 단채널 영상, 사운드, 5분(예정)’을 위한 드로잉입니다. 올 봄에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도연, 2020, 종이에 펜, 9 x 28 cm

4    홍도연, 2020, 종이에 펜, 9 x 28 cm. 요즘 날씨가 좋을 때 산초(제가 고양이에게 붙인 이름입니다)를 사생합니다. 좋아하는 글귀를 필사하는 심정으로 산초를 그립니다. 예리한 펜촉이 고양이를 그리기에 적합해서 펜을 자주 활용합니다.

홍도연, 2020, 종이에 목탄, 색연필, 펜, 67 x 110 cm

5    홍도연, 2020, 종이에 목탄, 색연필, 펜, 67 x 110 cm. ‘고양이와 나’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고양이의 모습을 반복해서 그리며, 고양이의 움직임을 좀 더 잘 그려야겠다는 필요를 느낍니다. 목탄, 색연필, 펜 같은 드로잉 도구를 사용해서 드로잉 연습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