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본인과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시각디자인을 공부했고, 현재 미술이론을 공부하며 앞으로 전시기획자로 살아가고 싶은 김명진입니다. 올해 상반기에 김은주, 이문영, 조미형 작가와 함께 첫 기획전 《Celeste》를 진행했어요. 하반기부터는 을지로 상업화랑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이론과 미술 관련 출판에 관심이 많습니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작업’을 ‘전시’로 바꿔 생각해본다면, 첫 기획전의 경우 운이 좋게도 마음이 맞는 작가분들을 만나 같이 나름의 천문학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전시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지금까지는 제가 ‘큐레이터’ 포지션에 있기보다는 작가분들의 ‘동료’라는 느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미술이론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저는 그렇게 자아가 강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타인들을 부드럽게 매개하거나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일을 잘 하지만, 전시를 만들든 글을 쓰든 거기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거나 강한 ‘한 방’을 먹이는 건 잘 못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회색 인간 같은 저의 성향을 장점으로 살려 훌륭한 매개자가 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날카로운 관점을 더 연마해 나가야 한다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저의 미술계 생활은 이제 시작이고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인문학적 사고에 더 숙달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코로나 발생 이후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올해 전시를 하려고 할 때 공모 사업이 아주 치열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작가분들과의 스터디도 줌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았고요,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저는 코로나 발생 이후 2020년을 이상하게 더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요. 첫 기획전도 작은 전시공간에서 하다 보니 다행히 무사히 이뤄졌고, 지금 쓰고 있는 졸업논문도 거의 앉아서 쓰는 거다 보니 ‘코로나 때문에’ 지장이 생길 부분은 거의 없었고요.

그러한 부분을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계시나요?
온라인으로 비대면 생활을 한다지만 그 기반에 있는 오프라인 세계에 대한 의식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간단한 예로 온라인 쇼핑의 증가가 물질 세계에 주는 영향력이 아주 큰 것처럼요. 그리고 인류세 담론 같은, 지구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고하는 것을 이 시즌의 트렌드로 받아들이거나 전시기획의 수단으로만 소비하지 않도록 경계하려고 해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여러 행사나 디지털 플랫폼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래 오프라인으로 기획된 전시가 온라인으로 전환된 경우에는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기획단계에서부터 온라인에 대한 고려가 세심하게 들어간 몇몇 프로젝트들은 흥미롭게 보았어요. 예를 들어 ‘데이터 파일’로서의 작품을 취급한 수장고프로젝트가 재미있었고요. 데이터 파일이 미술작업의 완성된 형태가 될 때 미술 생산과 소비는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외에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제가 모르는 다른 중요한 활동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다는 점이 ‘바로 지금 봐야 할’ 이유가 없게 만들다 보니 개인적으로 온라인 관람은 자꾸 미루게 되거나 꼼꼼히 살펴보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미술계의 온라인 콘텐츠를 접할 때면, 온라인에 최적화된 사용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아직 스스로의 가벼움을 극복하지 못한 건지, 특히 온라인에서는 자꾸 가벼운 것을 접하려는 경향이 강해지잖아요. 그래서 사실 잘 갖춰서 오픈한 온라인 전시나 행사보다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하는 미술 정보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평소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계시나요?

최근에 오랫동안 쓰던, 거의 모든 것을 저장해오던 USB를 잃어버리면서 백업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어요. 평소 강박적으로 구글드라이브에 업데이트하는 습관이 없었더라면 작성 중이던 졸업논문 파일을 날릴 수도 있었을 거예요(아찔!). 다행히 이중 저장 습관이 당장은 절 살렸지만, 아마 예전에 작업했던 것들 중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잃어버린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제가 뭘 잃어버렸는지조차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이네요.
      우리의 소중한 작업이나 자료들이 대부분 ‘데이터’로 존재한다는 점 자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동시대인들은 삶 자체가 데이터고, 데이터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극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강박적으로 클라우드에 연동되어야만 안심되잖아요. 하지만 반대로 모든 데이터가 남아있는 상황에 대한 공포도 있고요. 이를테면 저는 예전에는 SNS가 사적인 기록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철저히 공적 공간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데이터로 남는 것은 공적인 것만 남기자.’ 이런 생각을 강하게 해서인지 저는 인스타에서도 피드보다는 24시간 후에 사라지는 스토리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그렇다면 사적인 글이나 기록들은 어떻게 해야 정말 ‘사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남게 되네요. 아마 사적인 데이터가 있다는 생각 자체가 허구인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질문에서 너무 멀리 온 것 같기는 한데, 저는 정말 마음껏 사적인 생각들을 기록할 수 있는 공간을 거의 잃어버린 것 같아서 가끔 답답함을 느낍니다.

최근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요즘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주제가 1960년대 후반 개념미술에서 ‘전시로서의 출판’을 기획했던 큐레이터 세스 시겔롭(Seth Siegelaub)에 관한 것인데요. ‘전시를 위해 물리적 공간은 필요하지 않다’, ‘나의 갤러리는 온 세계다’라고 했던 그의 말들이 오늘날의 ‘온라인 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사실 논문을 쓰는 것 자체는 정말 피곤해서 안 하고 싶지만 그나마 제 주제가 스스로에게 재밌어서 계속 갈 수 있는 동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의 『자연과 미디어』라는 책을 세미나에서 읽고 있는데 흥미롭습니다. 미디어 이론서에서 바다, 불, 하늘, 구름 등이 키워드로 등장하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미디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미디어의 개념을 말하고 있어요. 세미나 때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미세먼지와 코로나19 이후로 이제 모두가 ‘공기’가 미디어임을 너무 잘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자연이 미디어라는 것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가 된 것 같다고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추천해요. (사실 논문 얘기 책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은데 요즘 제 일상이 다소 삭막하네요.)

향후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내년의 계획은 석사논문을 무사히 쓰고 학교를 졸업하는 것, 그리고 상업화랑에서 일하면서 독립 기획도 준비해보는 것이에요. 또 무슨 변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획을 써놓고 보니 내년도 정말 숨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그런데 나의 일에만 집중하다 보면 정말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때가 오는 것 같아요. 요즘 저는 주말마다 논문을 쓰고, 전시장에서 근무는 하지만 다른 전시들은 많이 못 보러 다니다 보니 생각이 딱딱해질 때가 많아요. 창조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비어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또 나의 일 이외에 다른 것들을 돌아보는 시선이 정말 필요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주변과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Celeste》 포스터

1    《Celeste》 포스터







《Celeste》 전시 카탈로그(도면과 글) pp. 2-9.

2    《Celeste》 전시 카탈로그(도면과 글) pp.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