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소정



본인과 작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에서 회화 작업을 하고 있는 양소정 입니다. 저는 매일 만나게 되는 사물들과 다양한 매체 너머의 수많은 이미지들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물들이 서로 엮어내고 있는 상황을 관찰하고 왜 그런 모양을 하게 되었을까 천천히 생각합니다. 사물들이 건네는 느낌들을 수집하고 분류, 재구성하여 작게 스쳐가는 생각의 부스러기들과 함께 도저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감정, 어느 날 문득 다가온 깨달음, 때로는 모두의 삶을 관통하는 사회적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들에 관한 그림을 그립니다. 살아가는 시간 동안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들과 생각의 결과로 남은 부산물들은 이미지의 형태로 몸과 마음 어딘가에 반드시 남아 유영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를 회화로 구현하고자 합니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수집과 기록, 분류와 정리, 그리고 재구성의 순서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매 순간 수집하는 이미지들과 함께, 문득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놓은 작은 메모와 스치듯 그려놓은 모양들이 작업의 소재가 됩니다.
      오랫동안 수집해온 이미지들을 펼쳐놓고 사물들이 전해주는 주관적인 느낌과 그 속성을 고려하여 세밀하게 분류한 다음,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알맞은 형태를 선택하여 화면 위에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드로잉 합니다. 주로 특정 기능과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커다란 형태로 엮어내어 표현하거나,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장면 안에 이미지들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연출합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움직여야 가능하기 때문에 매일 손가락 한 번이라도 움직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발생 이후 작업하면서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직접적으로 그림을 그릴 때에는 오랜 기간 혼자서 해왔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지만, 저의 작업이 제 안에 쌓여온 이미지를 화면으로 길어 올리는 것이기 때문인지 속이 허한 느낌이 오는, 뭔가를 채워 넣어야 할 때가 찾아옵니다.
      채워 넣는 방법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음악을 듣고 경험하는 것인데, 코로나 발생 이후 사실상 크고 작은 음악공연이 모두 멈춰버린 상태여서 재작년 12월에 있었던 큰 공연 이후로 공연장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몸을 때리는 커다란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뜨거운 몸들이 부딪히는 현장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 저에게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음악은 그 어떤 예술매체보다도 제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들을 건드려주고 채워주는 무척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에 음악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바뀐다는 것이 저에겐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건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한 부분을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계시나요?
좋아하는 라이브 영상을 보고 또 보고 듣고 하며 과거에 만들어 놓았던 연도별 음악 리스트를 반복하여 듣고 있습니다. 전에는 라이브 공연은 공연장에 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업하며 음악을 들을 때는 스튜디오 음원을 주로 들었는데 요즘은 라이브 영상도 부지런히 찾아 듣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여러 행사나 디지털 플랫폼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회화를 매체로 작업하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는 몰라도 작품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 안에서 이미지를 물질로 느끼고 그 안으로 들어가야 감상이 완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 전시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예술작품 감상이란 장르를 떠나 몸과 마음의 모든 감각을 통해 작품을 받아들이고 사유하는 총체적인 경험인데 온라인을 통한 감상 형태가 보편화되며 점차 특정 감각에 치중될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시의 설치 과정이나 철수 광경, 전시의 뒷이야기, 전시에 관한 담론의 기록, 관람 현장에서 놓칠 수 있는 정보들이 디테일하게 제공되는 온라인 플랫폼의 특성상 다른 작가들의 전시를 관람하는 입장에서 보다 입체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본인의 작업을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계시나요?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형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종이에 쓴 노트와 드로잉은 따로 파일링 해서 보관하고 있고 수집한 이미지, 드로잉 과정, 페인팅 과정의 스냅사진 폴더를 만들고 시간 순, 연도별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작품은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디지털 촬영한 후 연도별로 홈페이지에 아카이빙 하고 있습니다. 작업과정에 비해 과거에 진행했던 전시에 대한 기록이 미흡하다고 생각되어 보완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 흥미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물의 쓰임과 재료, 형태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사물들을 관찰하는 데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어쩜 그렇게 다 다르게 생겼는지 그런 모습을 하게 된 이유와 인공물일 경우 누가 왜 그 모양에 관여했는지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재미있고, 형태에는 반드시 이유가 따른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8년째 키우고 있는 아홉 개의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들이 매일 아침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관찰하는 일, 일 년 정도 규칙적인 달리기 운동에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음악들을 다시 듣는 일은 언제나 자극이 되는데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저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저를 지금의 제가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에 헤매다가도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알려주세요.

올해 11월에 개인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작지만 독특한 공간에서 새로운 형태의 작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시도해 보지 않았던 여러 가지 매체를 회화와 함께 실험해볼 생각입니다. 동시에 매일 조금씩 수집하고 관찰하고 드로잉하고 달리기를 할 것입니다. ‘매일 조금씩’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양소정, ,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62 × 111.2cm

1    양소정, <매달린 사람>,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62 × 111.2cm.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누가 잡아주고 있는지도 모르는 얇고 가느다란 것에 의지해서 넓은 세상 어딘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생각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양소정, ,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11.2 × 162cm

2    양소정, <물과 물의 경계>,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11.2 × 162cm.
     바다와 강의 경계에서, 강의 영역에 있던 물은 서서히 바다로 건너간다기보다는 그냥 갑자기 바다의 영역으로 휩쓸린다는 것을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양소정, ,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16.8 × 80.3cm

3    양소정, <심장>,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116.8 × 80.3cm.
     식물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닮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담은 그림으로, 막 피어나는 잎사귀와 꽃봉오리의 형태로 이루어진 심장을 그려보았습니다.

양소정, , 2019, acrylic on canvas, 90.9 × 72.7cm

4    양소정, <실험실>, 2019, acrylic on canvas, 90.9 × 72.7cm.
     언뜻 보기에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은 것에 관한 그림입니다.

양소정, , 2019, acrylic on canvas, 90.9 × 72.7cm

5    양소정, <무기력의 모뉴먼트>, 2019, acrylic on canvas, 90.9 × 72.7cm.
     기념비라는 것은 사라지는 기억을 붙들어놓으려는 시도를 시각화한 사물입니다. 이 그림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중에 꼭 찾아오는 무기력하고 텅 빈 순간들에 대한 그림으로, 허무하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그림이라는 사물로 남게 되어 쓸모없지 않았다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은 저의 몸부림과 같은 그림입니다.